5년 만에 정상 오른 허미정…"남편 '그림자 외조'가 큰 힘 됐죠"

입력 2019-08-12 16:02   수정 2019-11-10 00:01

11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베리크의 르네상스클럽(파71·6427야드) 18번홀(파4).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레이디스스코티시오픈(총상금 150만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한 허미정(29·사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경쟁한 챔피언 조의 모리야 쭈타누깐(태국)과 ‘핫식스’ 이정은(23)도 그를 안아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웃음 짓던 허미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곧이어 호주동포 오수현(23)이 샴페인을 뿌리며 우승을 축하하려는 순간 검정 트레이닝복 차림의 백팩을 멘 남자가 그린에 올라와 허미정을 꽉 끌어안고는 입을 맞췄다. 지인 소개로 만나 지난해 1월 결혼한 두 살 연상 남편 왕덕의 씨다. 허미정은 “5년 만의 우승이라 너무 기쁘다”며 “남편도 같이 와 있어 기쁨이 두 배가 되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5년 만에 LPGA투어 통산 3승 수확

허미정이 LPGA투어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2014년 요코하마 타이어LPGA 클래식을 제패한 지 5년여 만이다. 신인이던 2009년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생애 첫승을 신고한 지 5년 만에 2승을 수확하고 다시 5년이 흘러 113개 대회 만에 세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최종합계 20언더파 264타.

비가 내린 대회 마지막 날 출발은 녹록지 않았다. 1번홀(파5)과 2번홀(파4)에서 파를 기록한 데 이어 3번홀(파3)에선 보기를 내줬다. 이후 8번홀(파4)까지 타수를 유지하던 허미정은 9번홀(파4)에서야 시동이 걸렸다. 12번홀(파5)까지 네 홀 연속 버디를 수확하며 승기를 잡았다. 16번홀(파5)에서 다시 버디를 골라내 파를 기록한 챔피언 조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세 타 차로 벌렸다. 허미정은 사실상 승부가 갈린 18번홀(파4)에서도 날카로운 웨지샷으로 공을 홀에 바짝 붙인 뒤 버디를 추가해 네 타 차 승리를 자축했다.

남편, 3주 연속 ‘그림자 외조’

우승이 확정되자 남편 왕씨는 그간 마음 고생을 위로하듯 허미정의 등을 7차례나 토닥였다. 허미정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결혼 이후 성적이 나빠졌다. 허미정은 부산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왕씨와 결혼한 뒤 지난해 19개 대회에 출전해 7차례 커트 탈락했다. 본선에 진출한 대회에서 ‘톱10’ 안에 든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허미정은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다. 2005년, 2006년 국가대표로 전국체전을 2연패한 그는 프로로 전향하자마자 미국 무대로 눈을 돌렸다. 대전에서 의류사업을 하던 아버지 허관무 씨(65)는 딸을 위해 사업을 정리하고 뒷바라지를 했다. 캐디백을 멘 아버지를 위해 5㎏에 달하는 백의 무게를 1.3㎏으로 줄인 그의 효심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올해 그는 한창 때의 기량을 상당 부분 되찾았다는 평가다. 이 대회 전까지 14개 대회에 나가 두 차례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에서 공동 13위 성적을 낸 지 2주 만에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어니 엘스(남아공)’를 연상하게 하는 부드러운 스윙으로도 평균 267.06야드(30위)를 날리는 ‘소프트 파워’와 온그린 시(GIR) 평균 퍼팅 수 2위(1.73)의 정교한 ‘짠물 퍼팅’이 다시 살아났다.

왕씨는 일을 잠시 접고 3주간 유럽에서 열린 대회마다 허미정과 함께하며 ‘그림자 외조’를 했다. 허미정은 “(남편이) 옆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며 “친구처럼 대화도 많이 하고 연습할 때 퍼팅 스트로크도 봐주는 등 다방면에서 큰 도움을 줬다”고 고마워했다.

우승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7400만원)를 받은 허미정은 지난해 신혼살림을 차린 부산에 새 집을 장만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우승 인터뷰에서 그는 “올초 시아버님께서 우승하면 집을 사주겠다고 하셨다”며 “우승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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